공중보도空中步道
염창권
극세사의 유리 표면에 얼굴이 달라붙었다.
바다 밑이 들여다보이는 서슬푸른 날이다. 주머니에 넣어둔 카드키 두 장이 내가 가진 공간 정체성을 암시한다. 거리에선 0.25㎡ 용적의 몸들이 소음과 바퀴들을 겁내며 걷고 있다. 나는 건물에서 건물로 이동한다. 대출된 그는 내 몸속에 틈입해 있는 중,
안쪽의 길과 바깥의 허공이 유리 난간을 사이에 두고 투명하게 접혀 있다
이 공중 정원과 건축물들 사이에서 내가 가진 시간은 기호화되었다. 늙음을 돌보는 인부가 두엇은 더 있지만, 의심이나 회의는 습관처럼 다가온다. 바닷바람이 창틀에 진득하게 눌어붙는다. 섬이 보이다가 안개에 가려 보이는 날 많다.
잠시간, 그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피부 아래 늙음이 들끓고 있다.
그는 바로 나다.
-전문-
▶ 시詩, 언어의 문진文鎭에 관하여(발췌) _ 김효은/ 시인, 문학평론가
"유리 표면"과 "공중보도"는 이쪽과 저쪽을 경계 짓는 구획을 상징한다. 또한 시 속에서 묘사된 "유리 난관"의 길은 "안쪽의 길"과 "바깥의 허공"을 잇는 하나의 통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갑 속 "카그키 두 장"은 통행권이자 보안카드이며 "내"가 가진 "공간 정체성"을 "암시하"기도 하는 매개체인 동시에 그러한 "보완"으로 가두리된 공간에 일상을 묶어두는 지루하고 답답한 구속의 상징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건물에서 건물로 이동"을 할 수는 있지만, 동선은 그 안에서만 그것도 카드가 있을 경우에만 허락된다. "대출된 그"는 그 자신이 담보로 저당 잡혀 있으며, 이미 "보안"의 시선과 감찰은 "내 몸속에 틈입해 있"다. 삶은 이처럼 감시와 종속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순환을 반복하며, 대출이자와 원금상환을 위해 흘러갈 뿐이다. "공중 정원과 건축물들 사이에서"조차 "내가 가진 시간은 기호화"된다. "대출된 그"의 "늙음을, 돌보는 인부" 역시 "두엇은 더 있"다고 자신할지라도, "늙음"만큼은 그들의 보살핌을 통해 돌보거나 지연시킬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안개" 자욱한 날들 속에서 희망이라 부를 "섬"은 보이지 않고, 투명하게 가속화되어가는 것은 늙음과 퇴행뿐이다. 여전히 "의심이나 회의는 습관처럼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을 "정체성"이라고 부르는 삶은 거대한 감옥에 구속되어 있는 것임을 하나의 진실로 마주하게 된 시적 주체의 표정은 자못 쓸쓸하고 어둡다. 일상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시인은 이제 한 겹의 허물을 더 벗겨내고 보다 솔직해진 자신의 얼굴과 조우한다.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의심하고 회의하지만, 자명한 것은 "안개에 가려 안 보이는 날들"의 "서슬푸른" 잔해들뿐, 그리고 오직 "피부 아래 늙음"만이 "유리 표면"에 흡반처럼 들러붙어 있음을 자조하는 시인의 자기투영적 시선은 건물 외벽의 반사경처럼 고스란히 독자들에게까지 그 빛을 되비추고 있다. 염창권의 시는 그러한 반사경과도 같은 텍스트이다. "흘러내리는" 얼굴'들'과 허물'들'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의 적나라함과 유리의 투명함을 동시에 지닌. (p. 시 188/ 론 19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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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1-1월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작품론> 에서
* 염창권/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그리움이 때로 힘이 된다면』 『일상들』, 평론잡 『존재의 기척』 『한밤의 우편취급소』등
* 김효은/ 시인, 문학평론가, 2004년《광주일보》신춘문예 시 부문 & 2010년 『시에』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 『아리아드네의 비평』 『비익조의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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