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시라고 생각한다면
황인찬
해질녘 복도를 홀로 걸어가던 어린 날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잠들기 전 올려다본 천장의 어둠 너머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숨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자신들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물과 사건들, 부드럽고 따뜻한 대기현상이 일으키는 여러 감정들에 대해 말하려 한다
다섯 살 난 조카가 다가와 인생의 비밀을 털어 놓을 때는 너무 작아서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만이 전해져 오고, 알겠다며 같이 놀라는 시늉을 해야만 한다
그 모든 것이 세계의 깊숙한 곳과 연결된 것처럼
혹은 전혀 무관할 수 있다는 것처럼
어린 나는 어두운 복도를 지나 무작정 집을 나선다 어디로도 향하지 않았는데 자꾸 어딘가에 당도하는 것이 너무 무섭고 이상하다
-전문-
▶ 쓰는 대로 오는 미래: 2020년에 읽는 2010년대 시(발췌) _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황인찬 시에 오면 '석/인' 세계의 확장은 조금 더 일상적인 감각으로 다가온다. 조카가 아주 내밀한 비밀을 털어놓는다는 것, 즈 자기의 가장 안쪽에 있는 것을 타자('나')에게 전달할 때 그것은 지국히 조카만의 것인데, 화자는 이것을 개인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고, "세계의 깊숙한 곳과 연결된 것처럼" 여기고자 한다. 이러한 태도는 앞의 두 시(「개종」 「건축」 ※ 본 블로그에서 참고를 위해 삽입함)와 비교할 때 내면의 바깥으로의 전잘 및 확장 문제가 좀 더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감각의 차이를 보인다. 또 한 개인의 내면이 다른 이에게 전달되고 그 내면이 위의 시로 쓰였다는 사실을 톺아볼 때, 개인의 내면을 시 세계로 펼쳐 보이는 것은 '특별'하거나 '특수'한 감각에서 점차 자연스러운 것으로 다가온다. (p. 시 66/ 론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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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1-1월호 <기획성 | 2010년대 후반기 한국시의 새로운 흐름 2> 에서
* 황인찬/ 2010년 『현대문학』 으로 등단, 시집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201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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