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분더캄머*/ 오은

검지 정숙자 2021. 2. 12. 20:15

 

    분더캄머*

 

    오은

 

 

  과거는 왜 항상 부끄러운가?

  미래는 왜 항상 불투명한가?

 

  방문을 열면

  얼굴이 화끈

  배 속이 발끈

 

  허기를 참지 못하고 또다시

  너를, 너희들을 소환한다 오늘

 

  누구나 소유할 수 있지만,

  아무나 소유하지는 않는

 

  새로운 친구가 왔단다

 

  너희들은 서로 인사를 하지 않는다

  지분을 배정받은 공유자처럼

  묵묵하고 꿋꿋하다

  우정 따위의 지나친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너희들이 더 많아질수록

  너희들이 더 다양해질수록

  나는 더 작아지고 적어진다

 

  재능이 넘치면 노력이 부족해

  시작이 창대하면 끝이 미약해

 

  어떤 경지에 오르려다

  어떤 지경에 이를 수도 있지

 

  현재는 왜 항상 불완전한가?

 

  배 속을 다 채우면

  나는 예정대로 구역질을 한다

  신물나는 완벽함을 향해

 

  빛나가면서 빗나갈 때

  뒤쳐지면거 뒤처질 때

 

  놀랍게도

  나는 방 안에서 놀라워진다

  내 방을 누가 들여다볼까봐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진다

 

  눈을 감아도 네가 보인다

  너희들이 빤히 보인다

 

  아, 대체 나는 어디에 발을 들였단 말인가

  내 앞에 도래하는

  백지상태의 내일 앞에서,

  새로운 친구같이 어색하기만 한 나는

      -전문-

 

 

  * 독일어로 '놀라운 것들의 방'이라는 뜻.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에 물건을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방은 '분더캄머(Wunderkammer)'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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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1-1월호 <기획성_연속기획/ 2010년대 후반기 한국시의 새로운 흐름 2_오은> 에서

  * 오은/ 2002년『현대시』로 등단, 시집『호텔 타쉘의 돼지들』『나는 이름이 있었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