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스크래치/ 김서하

검지 정숙자 2021. 2. 1. 02:41

 

    스크래치

 

    김서하

 

 

  때론 가슴 속에 자기만 아는 감정이 있는 것이다

  

  입구에 소란이 깔릴 즈음 황학동 중고 골목

  몇 번의 고비를 넘겼던 테이블이 불안한 수평으로 서 있다

  식당 스티커를 떼어낸 자국을 안고

  폐업의 당위성을 증언하고 있다

  의자에 남아있는 온기는

  첫손님의 것일까 마지막 손님의 것일까

  그릇에 먼저 담겼던 것은

  쓴맛이었을까 달콤한 맛이었을까

  긁어낼수록 식별이 어려운 밑바탕 또는 초심

 

  나는 지금 어디에서

  신장을 해석하는 것일까

  개업을 분석하는 걸까

  몇 가지 더 덧칠해도

  늘 검정으로 보이는 스크래치처럼

  이리 긁히고 저리 긁힌 정서를

  설치미술작품이라 해야 할까

  분노라고 해야 할까

 

  골목이 겹쳐놓은

  서늘한 막장 또는 끝장

  누군가의 처분 뒤에

  누군가의 시작 앞에

  잠시 서서 풍경을 탐색하면

  진열대 위, 오래 앉아있던 접시 더미가

  켜켜이 그늘을 만든다

  언제 다가왔는지 모르게 고양이가

  비바람을 피하려는 듯 테이블 밑에서

  생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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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미래시학』 2020-겨울(35)호 <미래시학 시단 > 에서

   * 김서하/ 2012년 ⟪평화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무의 세 시 방향』 『가깝고,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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