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냄새
장승기
반짝이는 뽕잎 사이로 오디가 까맣게 익어갔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던 어린 시절
우리는 뽕나무 위에 올라앉아
입술이 익도록 오디를 따먹었다
오디 따먹기에 신나던 어린 시절
뽕나무 앞에서 나는 몸이 굳어버렸다
뽕나무 가지에 죽은 뱀이 길게 걸려 있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도망쳤다
어머니는 내 입술을 보고 웃었지만
내 입술은 아마 까맣게 죽어 있지 않았을까
나는 사람들이
왜 죽은 뱀을 나뭇가지에 걸어놓는지 알고 있었다
동네 형들은 죽은 뱀이 땅 냄새를 맡으면
다시 살아난다고 했다
요즘엔 죽을병에 걸린 사람도
산속 깊이 들어가 생땅 냄새를 맡고
다시 살아나온 사람도 있다는데
불현듯 그립다
내고향 뽕나무밭 땅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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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미래시학』 2020-겨울(35)호 <미래시학 시단 Ⅲ> 에서
* 장승기/ 강원 동해시 출생, 『시사사』로 시 부문 등단, 시집 『아내의 잠 『서울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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