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의 값
김명인
둘레가 온통 수평선이라면
중심은 둥근 원의 초점,
이 입체는 아득하게 구축되어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다
하늘과 둥글게 맞댄 망망대해
그 구체를 수평선이 절반으로 잘라 놓았다
막막한 중심의 한 점으로
나는 지금 사방을 건너고 있다
마침내 무한 고독과 만나는
이 씨앗을 누가 심었을까?
어디서 온 나로부터
세계를 확장하면서
그 초점이 되라고 파란 위에 던져 놓았을까?
가없는 둘레에 싸여도 중심은
언제나 한 점인 것,
일찍이 접합되지 못한 우주에 사로잡혔으니
지금 나 하나의 값은 없다
-전문, 『포지션』-가을
▶ 생의 굴레마다 굽이치는 시간의 파도(발췌) _ 김제욱/ 시인
시인은 시간의 길로 걷고 있다. '온통 수평선'은 바다를 바라보는 화자를 떠오르게 한다. '둥근 원의 초점'이란 시간, 곧 자신이다. 우리는 단독자의 굴레를 외롭다고 스스로 벗겨 낼 수 없다. 반면, 나는 내가 이 공간의 중심일 수 있다. 누구나 죽음의 깊이로 떠나는 여정에 있다. 그 중심으로 향해 소멸해 가고 있다. 언젠가 우리는 사라질 것이고 만날 것이다. 새로운 희망을 남겨둔 채, 그 불확정성에 대한 고백록을 남겨 둔 채, 아니 그마저도 형체를 잃은 채 고뇌한다. 오늘도 화자는 씨앗을 삼키고 확장하는 세계를 향하는 길 위에 있다.
그의 시는 이중적 공간 구조를 획득한다. 하나는 실제적 공간이며, 다른 하나는 시간이 확장된 내면 풍경이다. 물론, 이는 언어적 생태성에서 비롯한 모든 시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그처럼 촘촘하게 언어를 정교한 공간 구조로 세공하지는 못한다. 이는 그만이 지닌 현실 투사의 강렬한 힘으로 심상 그 자체를 엄숙하게 바라보고 세월의 시선을 포개어 놓은 화법이라 하겠다. 이러한 현실과 기억, 이곳과 저곳, 떠남과 돌아옴. 만남과 헤어짐의 교감은 허무의 근원에 가닿고자 하는 물음을 이끌고 있으며, 그 생의 둘레에 짙은 파도와 굽이치는 인생 여정의 발현이라 하겠다. (p. 시 55/ 론 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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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문예바다』 2020-겨울(29)호 <작가연구/ 근작시/ 작품론> 에서
* 김명인/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동두천』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등
* 김제욱/ 2009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라디오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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