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사구 너머 사구/ 배세복

검지 정숙자 2021. 1. 31. 02:22

 

    사구 너머 사구

 

    배세복

 

 

  저 선수 본 적 있네 연갈색 유니폼의 선수, 신두리 바다는 푸른 그라운드 펼쳐 보이고 그는 자꾸 타석에 서네

 

  온몸으로 또 사구 받아 내네 저 타자, 오늘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슥슥 엉덩이 문지르네 겅중겅중 모래밭으로 달려가네 팀을 위한 출루 의지는 그의 오랜 습관

 

  한번은 그런 적 있었네 태풍에 실려 온 엄청난 속도의 까치놀이 그의 후두부를 공략했네 악! 소리 지르며 비틀거리던 그가 투수에게 달려들었네, 달려갔으나 모두 그를 말렸고 함께 떠밀려 온 이들, 쯧쯧 오죽 아프면 저럴까! 혀를 차기 일쑤였네

 

  이를테면 그것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한 일, 그러므로 사구 최고기록을 갖고 있는 그는 오늘도 무수히 매를 맞네 파도에 쓸리고 다시 바람에 부딪혀 어딘가로 실려 가네 한참 동안 멍을 풀더니 저만치서 언덕 이루네 저녁 내내 두드려 주고 싶은 사르르 저 엉덩이

    -전문-

 

 

  ▶ 높은 완성도와 삶의 직관에 가닿는 문장들(발췌) _ 송찬호/시인

 「사구 너머 사구」는 야구 용어인 사구死球와 모래 언덕을 뜻하는 사구砂丘의 동음이의어가 만나, 신두리 해안 사구와 그 앞바다의 파도치는 정경을 생동감 있게 그려 냈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북서계절풍의 강한 바람에 의해 모래가 해안가로 운반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쌓여 이룬 퇴적지형이다. 시난고난한 사람살이가 그렇듯, 모래들도 파도의 무수한 사구를 온몸으로 받아 내며, 무시무시한 힘의 "까치놀한테 후두부까지 공략"당하면서, 또 멍든 채 "바람에 실려 또 어딘가로 실려 가기"도 하면서, 그만한 크기의 언덕을 이뤘을 테다./ 파도를 "푸른 그라운드" 위의 투수로 불러내는 독특한 발상과 경쾌하고 속도감 있는 언어의 운용은 이 시를 쓴 습작의 시간과 기량이 만만치 않음을 엿보게 한다. (p. 시 84-85/ 론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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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문예바다』 2020-겨울(29)호 <공모시/ 심사평> 에서

  * 배세복/ 201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몬드리안이 담요』

  * 송찬호/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붉은 눈 동백』 『분홍 나막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