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귀면 선인장/ 박몽구

검지 정숙자 2021. 1. 26. 14:46

 

    귀면 선인장

 

    박몽구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마른 목 풀어줄 물 한 모금 보이지 않는데도

  코브라처럼 곧추세운 허리 숙이지 않는다

  파란 하늘 향해 뻗은 직선에 매혹되어

  손으로 쓰다듬기라도 할라치면

  온통 가시 돋친 몸 내밀어

  검붉은 피로 물들이고 만다

  마음에 없는 사람에게 품는

  서릿발 같은 앙심이려니 했더니

  가시 아래 간직한 보석 같은 이슬 한 방울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란다

  땅값이 비싼 자리에 이웃들 제치고

  서둘러 뿌리를 내리느라 안간힘 쓰지 않고

  어느 누구도 꺼리는 변방에 뿌리내리고

  누구한테 물 한 모금 신세 지지 않아도

  밤하늘 별빛을 닦은 이슬

  제 몸을 찌르며 빚어낸 성성한 가시로 지키는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없다

  맹독을 쏘듯 머리꼭지에

  빨간 꽃 하나 앉는 순간

  거친 세상 향해 내민 귀면鬼面

 

  더없이 넉넉한 어머니의 얼굴로 바뀌는 걸

  본 사람은 없다

  어릴 적 불장난하다가

  귀 해진 책들 까맣게 태워먹은 날

  매섭게 회초리 드시던 아버지의 귀면 안쪽

  보이지 않게 흐르던 눈물

  그 보석같이 빛나던 것 놓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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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다층』 2020-가을(88)호 <다층 시단> 에서

   * 박몽구/ 1977 월간 『대화』로 등단, 시집 『칼국수 이어폰』 『단단한 허공』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