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면 선인장
박몽구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마른 목 풀어줄 물 한 모금 보이지 않는데도
코브라처럼 곧추세운 허리 숙이지 않는다
파란 하늘 향해 뻗은 직선에 매혹되어
손으로 쓰다듬기라도 할라치면
온통 가시 돋친 몸 내밀어
검붉은 피로 물들이고 만다
마음에 없는 사람에게 품는
서릿발 같은 앙심이려니 했더니
가시 아래 간직한 보석 같은 이슬 한 방울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란다
땅값이 비싼 자리에 이웃들 제치고
서둘러 뿌리를 내리느라 안간힘 쓰지 않고
어느 누구도 꺼리는 변방에 뿌리내리고
누구한테 물 한 모금 신세 지지 않아도
밤하늘 별빛을 닦은 이슬
제 몸을 찌르며 빚어낸 성성한 가시로 지키는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없다
맹독을 쏘듯 머리꼭지에
빨간 꽃 하나 앉는 순간
거친 세상 향해 내민 귀면鬼面
더없이 넉넉한 어머니의 얼굴로 바뀌는 걸
본 사람은 없다
어릴 적 불장난하다가
귀 해진 책들 까맣게 태워먹은 날
매섭게 회초리 드시던 아버지의 귀면 안쪽
보이지 않게 흐르던 눈물
그 보석같이 빛나던 것 놓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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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다층』 2020-가을(88)호 <다층 시단> 에서
* 박몽구/ 1977년 월간 『대화』로 등단, 시집 『칼국수 이어폰』 『단단한 허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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