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버릇
허연
가끔씩 그리워 심장에 손을 얹으면 그 심장은 이미 없지.
이제 다른 심장으로 살아야 하지.
이제 그리워하지 않겠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하면
공기도 우리를 나누었지.
시간이 날린 화살이 멈추고 비로소
기억이 하나씩 둘씩 석관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뚜껑이 닫히고 일련번호가 주어지고
제단 위로 올라가 이별이 됐지
그 골목에 남겼던 그림자들도,
틀리게 부르던 노래도,
벽에 그었던 빗금과,
모두에게 바쳤던 기도와
화장장의 연기와 깜빡이던 가로등도 안녕히.
보랏빛 꽃들이 깨어진 보도블록 사이로 고개를 내밀 때,
쌓일 새도 없이 날아가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했어요.
이름이 지워진 배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에서
명치 부근이 이상하게 아팠던 날 예감했던 일들.
당신은 왜 물위를 걸어갔나요.
당신이라는 사람이 어디에든 있는 그 풍경에서
도망치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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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시사사』 2020-가을(103)호 <화제의 시인을 찾아서> 에서
* 허연/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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