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600살 은행나무/ 하영

검지 정숙자 2021. 1. 23. 01:02

 

    600살 은행나무

 

    하영

 

 

  남문에서 대조루로 올라가는 왼쪽 길가

  육백 살 넘은 은행나무 아래서

  꽃은 피워도 열매 맺지 못하는 사연을 듣습니다

 

  열 가마의 은행을 세금으로 내던 것을

  철종시대 들어와서 스무 가마 내라 하니

  걱정이 태산 같은 전등사 스님들

  지혜롭고 도력 높은 추송스님 찾아가

  하소연을 하였다네

 

  한 걸음에 달려오신 백련사 추송스님

  은행나무 아래에 거적을 깔고 앉아

  사흘 밤낮 간절하게 기도를 하시더니

  "이제, 이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오."

  추상 같은 말씀에

  갑자기 먹구름이 전등사를 뒤덮더니

  천둥 번개 폭우가 쏟아졌다네

 

  놀란 대중들 정신을 차려보니

  기도하던 스님들은 홀연히 사라지고

  그 후부터 은행이 열리지 않았다네

 

  하늘이 노한 거라고,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탐욕은 또한 그칠 줄을 모른다고

  등 뒤에서 누군가 혼잣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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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문학과창작』 2020-가을(167)호 <신작시_중견 시인 27인> 에서

   * 하영/ 1989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 시집 『햇빛소나기 달빛반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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