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미네르바문학상 수상시집 『심장을 가졌다』> 中
말문
김지헌
하늘이 말문을 열었다
쏟아지는 장맛비에 꽃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진흙을 뚫고 수련이 말문을 열었다
과묵을 늘상 달고 다니던 아이가
아기아빠가 된 것 만큼이나
저 수다스러움은 위대하다
살아 있다고 소리치는 거
꽃이 잠깐 한눈판다 한들,
내가 엄마를 찢고 나와 처음 말문을 열었을 때
엄마도 그랬으리라
공원묘지의 봉분들, 말문을 닫은 그 이유라는 거
알고 보면 거기서 거기다
정선 비행기재를 지나는데
한여름 적요 속 터널이 속사포를 쏟아내고 있었다
살기 위해 죽을 힘 다하는 폭포수처럼
고요라는 평형수가 터널의 말문을 닫아버린다
언젠가 말이 문을 닫을 때
그때를 위해 문장 하나는 남겨놓아야 한다
한 줄 휘갈겨 쓴 번개처럼
-전문-
*심사위원: 문효치 김추인 이채민
----------------
* 『미네르바』 2020-겨울호 <제13회 미네르바문학상 수상자/ 김지헌 시인> 에서
* 김지헌/ 1956년 충남 강경 출생,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첫 시집 『다음 마을로 가는 길』 제5시집 『심장을 가졌다』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제비집 요리/ 박순원 (0) | 2020.12.25 |
|---|---|
| 서안나_사랑의 실패를 완성하는...(발췌)/ 애월을 그리다 : 김밝은 (0) | 2020.12.25 |
| 저 강, 붓다의 침묵/ 이영춘 (0) | 2020.12.23 |
| 늑대와 칼/ 박일환 (0) | 2020.12.22 |
| 수의(壽衣)/ 천금순 (0) | 2020.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