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말문/ 김지헌

검지 정숙자 2020. 12. 25. 01:44

 

 <제13회 미네르바문학상 수상시집 『심장을 가졌다』> 中

 

    말문

 

    김지헌

 

 

  하늘이 말문을 열었다

  쏟아지는 장맛비에 꽃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진흙을 뚫고 수련이 말문을 열었다

 

  과묵을 늘상 달고 다니던 아이가

  아기아빠가 된 것 만큼이나

  저 수다스러움은 위대하다

 

  살아 있다고 소리치는 거

  꽃이 잠깐 한눈판다 한들,

  내가 엄마를 찢고 나와 처음 말문을 열었을 때

  엄마도 그랬으리라

 

  공원묘지의 봉분들, 말문을 닫은 그 이유라는 거

  알고 보면 거기서 거기다

 

  정선 비행기재를 지나는데

  한여름 적요 속 터널이 속사포를 쏟아내고 있었다

  살기 위해 죽을 힘 다하는 폭포수처럼

  고요라는 평형수가 터널의 말문을 닫아버린다

  

  언젠가 말이 문을 닫을 때

  그때를 위해 문장 하나는 남겨놓아야 한다

  한 줄 휘갈겨 쓴 번개처럼

      -전문-

 

  

   *심사위원: 문효치  김추인  이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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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0-겨울호 <제13회 미네르바문학상 수상자/ 김지헌 시인> 에서

   * 김지헌/ 1956년 충남 강경 출생,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첫 시집 『다음 마을로 가는 길』 제5시집 『심장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