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늑대와 칼/ 박일환

검지 정숙자 2020. 12. 22. 02:06

 

 

    늑대와 칼

 

    박일환

 

 

  에스키모가 늑대 잡는 법은 이렇다네 얼음 벌판에 피 묻은 칼을 거꾸로 꽂아놓으면 피 냄새를 맡은 늑대가 와서 칼날을 핥는다는 거야 그러다가 혀를 베고, 자기 혀에서 나온 피를 계속 핥는다는 거지 결국 피가 다 빠져나가 죽은 늑대를 둘러메고 오기만 하면 된다는군

 

  지금, 피 묻은 칼날을 자기 혀로 핥고 있는 늑대는 누굴까? 피 묻은 칼을 꽂아두고 간 자는 언제나 보이지 않고, 피의 향내가 주는 유혹은 강렬해서 자기도 모르게 긴 혓바닥을 내밀곤 하지 탐욕스러운 혓바닥부터 뽑아버려야 하는데 그럴 수 있어? 낄낄거리며 조롱하는 소리 환청처럼 들려오는 동안에도 칼날 곁을 떠나지 못하는 혓바닥의 저 성실한 노동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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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들』 2020-가을호 <시> 에서

   * 박일환/ 1997『내일을여는작가』로 등단, 시집 『덮지 못한 출석부』 『등 뒤의 시간』, 청소년시집 『만렙을 찍을 때까지』 『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 『국어사전 혼내는 책』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