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저 강, 붓다의 침묵/ 이영춘

검지 정숙자 2020. 12. 23. 21:18

 

  <2020, 제16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자 대표시> 中

 

    저강, 붓다의 침묵

 

    이영춘

 

 

  저 강물 속에 잠들지 못하는 불기둥 돌기 하나

  누구의 영혼 한 조각 이슬방울로 떠도는 편재遍在인가

  편재의 그 넋으로 침묵에 이르는 지상의 주재자 그대, 

  강물 일렁이는 저문 강 창가에 등 기대고 서서 나는

  내, 가는 길을 그대에게 묻는다

 

  장원의 숲속에서 한 때 방탕하였던 그대 업보의 흔적,

  그 천형의 흔적, 붉은 화인 등줄기에 꾹꾹 찍으며

  그대는 도의 길, 무위자연의 공으로 이르는가

 

  얼마쯤 더 가야 그대의 가슴 저 밑바닥에 닿을 수 있을까

  보리수 고행의 열매, 브하가비띠*의 적멸로 뚝뚝 흐르는데

  나는 이 쪽 강 하구에서

  이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붉은 죄수의 쇠사슬 목에 걸고

  절름절름 세상 길을 가고 있다

 

  붓다여! 그대 잠들지 못하는 불기둥 침묵의 돌기 하나

  동방의 강 하류 어느 억겁의 중간쯤에서

  그대 돌아갈 무위자연의 긴 강, 그 푸른 심장에

  나는 매일 밤 그대 등 뒤에 서서 촛불 한 자루씩 불사르며

  슈냐**로 가는 길을 묻고 있다

      -전문-

 

   * 브하가비띠: 산스크리트어 '성스러움"의 뜻

   * 슈냐(sunya): 불교경전에서 '空'의 뜻

 

   *심사위원: 문효치  김추인  장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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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0-겨울호 <특집/ 제16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자/ 이영춘 시인> 에서

   * 이영춘/ 1941년 강원 봉평 출생,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첫 시집 『종점에서』 제15시집 『오늘은 같은 길을 세 번 건넜다』시선집 『들풀』 『오줌발, 별꽃무늬』, 번역시집 『해, 저 붉은 얼굴』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