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질경이 꽃이 피었어요
학명란
장마가 끝나고 태풍이 두어 차례 지나갔어요
백일홍이 잦은 비로 웃자란 줄기를 흔들며 꽃을 피웠어요
늦었지만 질경이 꽃도 하얗게 피었네요
이사 온 집엔 마당이며 뒤꼍에 빼곡해요
눈물겹게 질경이가 반갑기는 처음이네요
작년 순희 사는 제주 갔을 때 사려니 가는 버스 안에서 한 노인을 봤어요 가는 비가 안개처럼 대지에 가득한 멀리 산허리 감긴 구름을 보며 들릴락 말락 높낮이 없는 말투로 이야기 하는데 딱히 누가 듣길 바라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죽은 사람이 보고 싶으면 말이지 질경이 씨앗으로 기름을 내, 그 기름으로 전을 부쳐 제사상에 올리면 그 냄새를 맡고 죽은 사람이 와 그렇게 하면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어 그리움이 내밀하게 쌓이고 쌓이면 저런 눈빛이 될까 싶은 말하자면 아주 오래 된 유품 같은, 내겐 기억이 없지만 오빠와 아버지에겐 더없이 소중했을 것 같아 간직하고 있던 그런 깊고도 낡은 색깔의 무엇 같은 눈빛으로 말이죠 질경이 씨앗이라니 기가 막히지 않아요 저승까지 가지 않아도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다잖아요
무심히 밟던 질경이 꽃이 눈에 들어 왔어요
봄에 올라온 꽃줄기에 빽빽하게 하얀 꽃이 피었어요
씨앗이 제법이겠어요
오빠 기다려요
기일이 오기 전에 씨앗을 받아볼게요
올해 안 되면 내년 후년까지도 모아볼게요
마당 가득한 질경이를 밟지 않고 건너 뛰어요
길경이 씨앗 기름으로 오빠가 좋아하는 굴전을 부쳐볼게요
오빠, 질경이 꽃 본 적 있나요
간절함과 그리움이 이살꽃차례로 피어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질경이 꽃이 사무치게도 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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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크 『화요문학』 2020년 24호/ 2020. 11. 20-발행 <초대 신작시> 에서
* 학명란/ 2007년 『오늘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문득』 , <해밀>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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