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풍륜(風輪)/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0. 12. 12. 02:35

 

    풍륜風輪

 

    정숙자

 

 

  바람은 우리의 눈 속에 있다. 저마다의 눈 속에서 일어나고 불붙고, 각종 바퀴를 굴려 난바다를 건너가기도 한다. 협곡에 갇히거나 부딪쳐 파열하는가 하면 폭포에 섞여 울부짖는 날개를 허공에 흩뿌리기도 한다.

 

  누군가에 의해

  무언가에 의해

 

  다차원을 건너온 바람이 한 겹 창문을 위협하는 밤, 신이 세운 건축물  고요를, 뼈대 실한 바큇살이 맹공하는 밤, 그 급습보다 빠른 정동은 우리의 문밖, 몸 밖이 아닌 우리의 눈꺼풀 밑 눈동자 가장자리에 낀다.

 

  구식이었던가? 속 앓던 카프카가 사라지고

  너무 신중했던가? 생각 많던 칸트도 물러가고

  서로 선하기를 바랐던 키케로도

 

  서풍에 실려 돌아가고, 배부른 자들의 독설만이 난무하는 지구  진화의 최전선 오늘  , 온통 여기   저기   거기   이제   곳곳마다 투명 바리케이드. 발 디딜 틈도 없이 비쳐들고 날아드는 속임수와 비수와 doxa.

 

  누가 다 먹어 치웠는가?

  아무리 급하기로, 허겁지겁

 

  달빛   은은한

  별빛   아스라한

  쪽빛과 이슬까지를 다 퍼먹고   파먹고   드디어 체했구나. 이 빈곤과 위기를 치료할 정신과 의사들 다시 메스를 챙기자고 저 멀리서 회의하는 데카르트, 사르트르, 훈데르트··· 바··· 봤어? 못 봤어? 닫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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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0년 12월호 <신작특집>에서

  * 정숙자/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