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물곁/ 이혜미

검지 정숙자 2020. 12. 9. 02:53

 

    물곁

 

    이혜미

 

 

  호수 속에 뿌리내려 모습과 색들을 길어 올리는 결심이 있습니다. 흔들리는 잎사귀, 점멸하는 초록. 물의 안방에도 푸른 커튼이 있어 바람의 결을 세심히 본뜨는군요.

 

  고개 숙인 수양버드나무의 각도는 고민 중인 신의 자세입니까. 매일의 결정들 속에서 잎사귀의 물관까지를 떠올리는 지금, 나는 잠시의 물방울이 되어 빛의 곁을 얻습니다. 우리가 영혼을 사용하는 속도를 시간이라 부른다면 나무의 시간은 먼 곳을 방향하는 선택과 지속이겠지요. 그 오래된 약속을 떠올리면 수양버들은 여름을 연주하는 현악기가 됩니다.

 

  내뻗은 가지 끝 흔들리는 새의 전생······ 잎사귀들로 빗질한 날개는 어리고 부드러운 무늬를 얻고, 물방울들은 나무의 높이를 얻어 새롭게 울창해집니다.

 

  나무들이 저마다의 그림자에 골몰하는 황혼입니다. 낙엽은 나무의 몸속을 오래 거닐었던 발자국들일까요. 그들에게도 오래 꿈꾸어온 후생이 있는지 작은 그늘을 품고 먼 곳을 데리러 가는군요. 물새들이 호수에 날개를 담그고 창공을 씻어내듯이. 드리워진 버들잎이 무리지은 물고기들처럼 호수의 편에 가담합니다. 물이 오래 꿈꿔온 내생來生입니다.

 

 

   ----------------------

  * 『형평문학』2020-통권2호(비매품) <형평문단 1>에서

  *  이혜미/ 2008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보라의 바깥』 『뜻밖의 바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