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파란(破卵)/ 한혜영

검지 정숙자 2020. 12. 4. 01:42

 

  <2020, 제5회 동주해외작가상 수상작> 中

 

    파란破卵

 

    한혜영

 

 

  횃대에는 캄캄한 시간이 앉아 꾸벅거립니다

 

  어쩌자고 이번 생엔

  울음만 주시고 날개는 안 주셨는지요

 

  슬픔이 박꽃처럼 피어나는 지붕을 오르리라

  피를 토하듯이

  새벽을 알리리라 나팔 같은 꿈을 꾸기도 하였는데,

  허무로 지은 둥지에 둘러앉아

  시도 때도 없는

  시간의 오물이나 받고 있습니다

 

  시궁쥐처럼

  숨어들어온 불안이 나를 헐어내네요  

  들키지 않을 만큼씩만

  몰래,

 

  내장 깊숙한 곳에 감춰둔

  나를 훔쳐내는 불안은 도대체 누구의 지시를 받은 것입니까

 

  운명이 찾아와 천연덕스럽게

  줄탁동시에 대해서 말을 걸 때

  은젓가락처럼 가볍게 부리를 놀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설령 밀랍으로 빚었다 해도

  날개를 가질 때까지는 귀머거리 돌처럼 견딜 것을

 

  도대체 어떤 부리가

  그때 하필 내게로 와서 파란破卵을 제시했던 것입니까

     -전문-

 

 

   * 심사위원 : 장옥관  유성호  김행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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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산맥』 2020-가을호 <제5회 해외동주문학상>에서

   * 한혜영/ 충남 서산 출생, 미국 풀로리다주 거주, 1994년 『현대시학』 추천 &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뱀잡는 여자』 『검정사과농장』 등, 동시집 『개미도 파출소가 필요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