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너를 만났다고 쓴다
신현락
나와 너의 거리는 울다가 말라버린 별빛보다 멀고
낮과 밤이 바뀌는 시간보다 가깝다
너를 잃어버리고 새털 같은 날들이 지나갔으나 그건 상실과 다르다
쏟아지는 페르세우스 유성우 속에서 혼자 깨어 있는
소년의 눈빛을 본다
정답고 쓰라린 대명사들의 주체
네가 없으면 무슨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을까
비릿한 형용사들과 푸른 정맥처럼 돋아나는 동사들의 힘찬 도약은
나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었다
네가 없으면
오늘의 이야기가 과거로 흘러가지 않는다
너의 과거가 나의 현재가 될 수도 있겠으나
이 생에서 너와 나에게 같은 시간이 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그 차이가 울음을 낳고 시간과 비시간을 낳는다
너에게 가는 길에 별빛 흐리다고 해서
오늘에 도착하지 않는 내일 또한 없지 않겠는가
나는 걷고 또 걷는다
돌아보면 대기권에 떨어지는 별똥별
영원한 흐름을 잃어버린 대신
찬란한 현재가 기억 저편에서 폭죽처럼 터진다
내가 걸어가는 거기에서
어쩌면 너는 이미 나를 지나쳐 갔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의 이야기가 시차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은
시간이 시간을 포기하지 않는 이치와 같은 거다
어제는 거기에서 너와 이별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내일, 너를 만났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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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 2020-가을호 <신작시>에서
* 신현락/ 1992 ⟪충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그리고 어떤 묘비는 나비의 죽음만을 기록한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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