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독주/ 천융희

검지 정숙자 2020. 11. 27. 02:28

 

 

    독주

 

    천융희

 

 

  연장을 치켜든 사람들이 무릎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고 갯벌의 복부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썰물의 하얀 치맛자락을 따라 그들은 대부분 수심의 문장을 선호하고 낯선 모어에 집중하는 듯하다

 

  손아귀 사이로 발견한 은신처는 즉시 발굴로 이어졌으며 절묘한 타이밍을 위하여 악전고투하는 사람들

 

  뻗어있는 은유의 물길을 따라 행간 곳곳에 숨어 꿈틀거리는 찰나를 엮어 오늘의 지면을 여닫는다

 

  바다가 들이마신 긴 숨에 한쪽 발을 파묻고 돌아 나온 맨발의 사람들은 밤이면 세이렌의 기묘한 노랫소리에 잠들곤 한다

 

  스스로 따른 독주를 들이키는 밤

 

  물새 한 마리

 

  검은 밤바다의 부록을 찢어 허공에 잠길 때

 

  창백한 눈동자 속으로 뛰어내린 별의 빈 무덤에서 하얀 파도가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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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시학』 2020-가을호 <미래시학 시단 >에서

   * 천융희/ 경남 진주 출생, 2011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스윙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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