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곳
최동문
이사를 한다
가볍지 않은 소유의 무게
욕심으로 맡은 무거운 짐들을 천국으로 보냈다
빈집이 된 아파트 열쇠를 다른 여행자에게 주었다
가볍다
가벼운 살림을 무처럼 뽑아 이삿짐 트럭에 실었다
트럭은 길을 돌아 도시의 외곽으로 달렸다
오래된 한옥에 짐을 풀었다
첫 밤이 와서 도배한 다락에 기어올라
낮은 천장 형광등을 보며 누웠다
오래전에 다락방에서 자고 일어났던
아기의 울음이 들렸다
창문 문풍지가 된 아가야, 이제는 웃으며 자자.
풀지 못해 누워있는 책은
마흔 개 종이 상자에서 아직 자고 있다
책은 하나씩 뽑아 보는 천사의 날개 깃털
도시의 힘을 찾아다녔던
차가운 길에 앉은 선잠이 있다
등에 지고 출발한 책을 깨워 한 권씩 버렸다
천사는 날개를 잃고 선녀가 되었다.
뜨거운 커피 한 잔 식히는 사이에
찬물을 한 사발 마셨다
이제는 아무도 없다
모자를 쓴 한낮과 흙 마당은 축복
굶어도 홀로 배고프다
꽃밭에, 잔자갈에, 맨발이다
느린 걸음이 잘 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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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시학』 2020-가을호 <미래시학 시단 Ⅲ>에서
* 최동문/ 경북 경주 출생, 199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밤의 태양』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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