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안반(案盤)과 홍두깨/ 이경옥

검지 정숙자 2020. 11. 24. 01:46

 

 

    안반案盤과 홍두깨

 

    이경옥

 

 

  이사할 때, 마나님은 안 태워도

  국수 안반은 꼭 실어야 한다던 아버지

  아버지는 밥보다 국수를 더 좋아하셨다

  안반만 가져가면 국수는 누가 밀 건데

  하시며 샐쭉 토라지시던 엄마

 

  하루에 국수 수십 태를 밀어내던 모내기 철

  그때 그 시절이 징글징글하다 그러시면서도

  가운데가 얇아진 느티나무 국수 안반과

  반들반들 윤이 도는 물푸레나무 홍두깨

  자그마치 아홉 번의 이사마다 먼저 챙기셨다

 

  그 안반으로 이젠 국수 태 대신 만두피를 미신다

  엄마는 밀가루 반죽 밀어 너럭바위처럼 늘리시고

  아버지는 옛이야기 섞어 만두를 빚으신다

 

  이제 홍두깨와 안반은 두 분의 자서전이다

  다듬잇돌처럼 단단했던 아버지

  몸피 준 마른 홍두깨가 되시고

  연골이 닳아 달그락거리는 엄마

  어느새 가운데가 닳아버린 안반이 되셨다

 

   -------------

   * 『다층』 2020-가을호 <다층시단>에서

   * 이경옥/ 2020년 『시와소금』으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깨비/ 윤인미  (0) 2020.11.27
묘비/ 김(손)혜숙  (0) 2020.11.27
체이셔가 필요해/ 박용진  (0) 2020.11.24
어디쯤/ 이채민  (0) 2020.11.23
굴피나무 아래 7월/ 김영찬  (0) 2020.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