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반案盤과 홍두깨
이경옥
이사할 때, 마나님은 안 태워도
국수 안반은 꼭 실어야 한다던 아버지
아버지는 밥보다 국수를 더 좋아하셨다
안반만 가져가면 국수는 누가 밀 건데
하시며 샐쭉 토라지시던 엄마
하루에 국수 수십 태를 밀어내던 모내기 철
그때 그 시절이 징글징글하다 그러시면서도
가운데가 얇아진 느티나무 국수 안반과
반들반들 윤이 도는 물푸레나무 홍두깨
자그마치 아홉 번의 이사마다 먼저 챙기셨다
그 안반으로 이젠 국수 태 대신 만두피를 미신다
엄마는 밀가루 반죽 밀어 너럭바위처럼 늘리시고
아버지는 옛이야기 섞어 만두를 빚으신다
이제 홍두깨와 안반은 두 분의 자서전이다
다듬잇돌처럼 단단했던 아버지
몸피 준 마른 홍두깨가 되시고
연골이 닳아 달그락거리는 엄마
어느새 가운데가 닳아버린 안반이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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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20-가을호 <다층시단>에서
* 이경옥/ 2020년 『시와소금』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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