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쯤
이채민
사과가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
간격이 생겼다
붉은 것들이 반으로 잘릴 때 쏟아내는 고통을
아름다운 끝, 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붉은 것들은
어디쯤에서 아팠을까
양파의 신음이 푹푹 썩는 동안
가시들이 소용돌이치며 알몸을 읽고 가는 동안
새파랗게 놀란 초침이 참을 수 없이 쏟아졌다
너라는 공복을 견디며
어떤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사과의 공복이 팽창해지는 날이라고
정확하게 밑줄을 그었는데
너는 뒤꿈치를 숨기고 거꾸로만 지나간다
무겁게 문 닫는 소리
슬리퍼 끄는 소리
기침소리
소리의 무늬들이 꽃잎처럼 희망처럼
깡마른 어둠을 밝히는데
잡히는 건 모두 딱딱하거나 눅눅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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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펀』 2020-가을호 <신작시>에서
* 이채민/ 2004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오답으로 출렁이는 저 무성함』 『동백을 뒤적이다』 『빛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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