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어디쯤/ 이채민

검지 정숙자 2020. 11. 23. 01:57

 

 

    어디쯤

 

    이채민

 

 

  사과가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

  간격이 생겼다

 

  붉은 것들이 반으로 잘릴 때 쏟아내는 고통을

  아름다운 끝, 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붉은 것들은

  어디쯤에서 아팠을까

 

  양파의 신음이 푹푹 썩는 동안

  가시들이 소용돌이치며 알몸을 읽고 가는 동안

  새파랗게 놀란 초침이 참을 수 없이 쏟아졌다

 

  너라는 공복을 견디며

  어떤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사과의 공복이 팽창해지는 날이라고

  정확하게 밑줄을 그었는데

 

  너는 뒤꿈치를 숨기고 거꾸로만 지나간다

  무겁게 문 닫는 소리

  슬리퍼 끄는 소리

  기침소리

  소리의 무늬들이 꽃잎처럼 희망처럼

  깡마른 어둠을 밝히는데

 

  잡히는 건 모두 딱딱하거나 눅눅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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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펀』 2020-가을호 <신작시>에서

   * 이채민/ 2004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오답으로 출렁이는 저 무성함』 『동백을 뒤적이다』 『빛의 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