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배옥주_자성과 상생의 결의(발췌)/ 녹명(鹿鳴) : 박무웅

검지 정숙자 2020. 11. 21. 00:52

 

 

    녹명鹿鳴

 

    박무웅

 

 

  사슴은 먹음직스러운

  풀밭을 지나면 동료들을

  불러 모은다 한다.

 

  그것을 녹명鹿鳴이라 한다.

 

  독식이 없는 만찬인 것이다

  고기 한 점 물고 송곳니를 드러내는

  짐승들 속에서 녹명은

  아름다운 상생인 것이다

 

  그것은 풀이 밭을 이루는 이유이고

  세상의 군락지들의 이유이기도 하며

  또 어린 물고기가 떼를 짓는 이유다

 

  또 도시의 외곽에 모여 있는

  온갖 부품들의 공단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들이 없다면 세상에는

  그 어떤 완성도 없다

  하나의 완성품에는

  여러가지의 협력제품들이 들어있듯

  취약이라 불리우는 존재들과

  순한 성질의 생명들에겐

  다 주고 받는 협력들이 있다.

 

  녹명을 하는 사슴을 떠올리면

  저녁연기마저 어둑해지던 그 시간

  큰 소리로 밥 때를 알리던

  어머니가 떠오르는 것이다.   

    -전문-

 

 

  자성과 상생의 결의(발췌)_ 배옥주/ 시인 

  위의 시 「녹명鹿鳴」에서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목 놓아 우는 것은 동료를 불러 모아 풀밭(먹이)을 함께 나눠 먹기 위해서다. 시경詩經의 '유유녹명 식야지평呦呦鹿鳴 食野之苹'에서 유유녹명은 사슴의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 '유유'와, 사슴의 울음소리인 '녹명鹿鳴' 으로 풀이된다. '유유녹명 식야지평'은 사슴이 들판에서 맛있는 풀을 찾게 되면 '유유呦呦'라는 울음소리로 친구들을 불러 모아 함께 먹는다는 의미다. 여기서 유래한 녹명鹿鳴이라는 악기는 임금이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데 쓰인다. 그 악기의 연주에는 녹명의 의미인 '서로 나누고 도와 함께 잘 살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경쟁 사회를 주도하는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기에 급급하다. 주린 배를 채우고 나서도 과욕에 발은 담근 채 절룩이며 살아간다. 인디언 체로키족이 따뜻한 영혼을 지키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듯, 맹수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먹이를 탐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주린 배를 채우고도 담을수록 늘어지는 욕심 자루에 꾸역꾸역 쟁여놓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풀밭을 발견한 사슴이 상생하기 위해 동료를 부른다니, 순간 부끄러워지는 건 누구의 몫인가? 사슴은 함께 먹이를 나누기 위해 우는 유일한 동물이다. "동료"를 "불러 모"으는 사슴의 울음소리 ' '유유呦呦'가 듣고 싶어지는 저녁. 밥 먹으라고 화자를 부르는 어머니의 큰 목소리가 녹명鹿鳴처럼 들려온다. 엄마의 목소리처럼 아름다운 사슴의 울음은 욕심에 찌든 인간의 귀를 활짝 열어줄 수 있다. (p. 시 91-92/ 론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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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펀 2020-가을호 <신작소시집/ 신작소시집 리뷰> 에서

  * 박무웅/ 1944년 충남 금산 출생, 199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소나무는 바위에 뿌리를 박는다』 『공중국가』 『끼, 라는 날개』 등 

  * 배옥주/ 2008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오후의 지퍼들』 『The 빨강』, 연구서 『이형기 시 이미지와 표상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