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강수_심청을 만나는 상상력의 향연/ 심청이의 내심 : 임덕기

검지 정숙자 2020. 11. 17. 22:09

 

 

    심청이의 내심

 

    임덕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을 두고

  낳은 지 이레 만에 떠난 곽씨 부인

 

  황해도 황주 도화동에서

  얼굴도 모르는 어미를 그리며 자란 청이

  자신의 처지를 속으로 슬퍼하면서

  눈먼 아비를 돌보았다

 

  수양딸로 삼으려던 장승상 부인 댁에 갔다가

  눈먼 아비 때문에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딸을 기다리다 개천에 빠진 심봉사

 

  공양미 삼백 석으로 눈을 뜰 수 있다는

  스님이 넌지시 한 말

  앞 뒤 처지를 가리지 않고 덥석 받아들여

  딸에게 알린 경솔한 그 말이

  구만리 같은 딸의 앞날을 가로막았다

 

  늙은 아비를 위해

  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고

  치마를 뒤집어쓰고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

 

  어릴 적에는 아비 대신 동냥하고

  커서는 남의 집 일거리를 돕고

  마음속에는 그늘이 쌓여가고 있었다

 

  내심 살고 싶은 마음도 옅어져 가고 있었다

       -전문-

 

 

  심청을 만나는 상상력의 향연饗宴(발췌)_강수/ 시인 

  1연에서부터 이 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심청>의 내용을 그대로 읊어나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는 산문의 서사성이 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산문의 내용을 운문으로 그대로 변환한 것이라면 그 시는 원작과 차별성이 없기 때문에, 시로서의 존재 가치를 획득하기가 어렵다. 시인은 이러한 장르 전환과 함께 심청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2연에서 '자신의 처지를 속으로 슬퍼하면서', 4연의 '구만리 같은 딸의 앞날을 가로막았다'는 시인의 <심청>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그동안 우리는 '심청의 효심'을 부각시켜 왔다. 그때의 심청은 유교적 덕목을 추구하는 조선사회의 전형적 · 보편적 인물로 해석되었으며, 효를 위해서는 목숨까지 바치는 것이 옳다는 헤게모니를 반영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심청의 내면세계에 초점이 있기보다는 심청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시로 장르 전환을 시키면서, 시인은 심청의 내면 세계에 초점을 맞춰서 서사를 진행해나가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심청'이라는 개인의 내면적 삶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이것이 이 시의 개성을 확보하고 현대적 헤게모니를 반영한 재해석 작품이 될 여지를 만들어 주고 있다. 독자들은 여기서 이 시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심청'은 현대적인 여성상으로 재해석되고 있으며, 현대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투사한 인물로 재탄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p. 시 37-38/ 론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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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층 2020-가을호 <기획특집/ 현대시로 부활한 심청/ 신작시> 에서

  * 임덕기/ 2014년 『애지』로 시 부문 등단 & 『에세에문학』으로 수필 부문 추천완료, 시집 『꼰드랍다』, 수필집 『조각보를 꿈꾸다』 『기우뚱한 나무』 등 

  * 강수/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서사시 대백제』, 오페라 리브레토 『오페라 운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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