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전소영_밤이 길어질 계절 앞에서...(발췌)/ 중요한 역할 : 임승유

검지 정숙자 2020. 11. 10. 16:17

 

 

    중요한 역할

 

    임승유

 

 

  작고 예뻐서 데려온 애가 남천이었어요. 어디서나 잘 자란다고 하고 한 동네 살다가 이사 간 금천이라는 애도 생각나고, 그래서 잘 키워보고 싶었죠. 생각날 때마다 창문 열어주면서 물주면서

 

  그랬는데 시들해요.

 

  일조량이 부족했을까요. 금천이가 중학생이 되어 놀러왔을 때 엄마 뒤로 숨던 일이 생각납니다. 동네에 그 애가 있다 생각하면 신나면서도 그랬어요. 그런 날들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가고

 

  물건을 돌려주러 가는 길에

 

  그 애가 자란다면 딱 이렇겠구나 싶게 엄청 크고 무성한 남천을 봤어요. 이 집에서는 밖에 내놓고 기르는 모양이더라고요. 남천을 잘 키우면 이렇게 되는구나. 정신이 번쩍 드는 겁니다.

 

  키우던 애가 커서

 

  키우는 마음이 뭔지 아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왜 자꾸 잊을까요. 얼른 가서 남천을 봐야겠어요.

     -전문-

 

 

  밤이 길어질 계절 앞에서, 우리의 스웨터(발췌)_전소영/ 문학평론가 

  동물은 어느 정도 자라면 성장을 멈춘다. 반대로 식물은 생의 마지막 날까지 자랄 수 있다. 사람은 동물의 외피와 식물의 내면을 지녀서 육체가 언젠가 정지하더라도 내면에서만은 영원히 가지를 뻗고 잎을 낼 것이다. 그렇다면 한 인간의 성장을 말할 때 좀 더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사실 그의 외면이 아니라 내면일지 모른다. 나의 마음이 나무처럼 푸르고 무성한 마음을 지니기를 바라며, 때론 누군가를 그렇게 키울 방법을 알아가기 위해, 우리는 종종 나무로부터 배운다. '키우다'의 목적어 자리에 사람과 나무를 겹쳐놓은, 옮긴 시로부터 그렇게 들었다. /(······)/ 그는 남천나무이기도 하고 나무를 닮은 아이이기도 할 텐데 부모나, 부모 역할을 하는 누군가로 짐작이 되는 '나'는 남천을 크고 무성하게 자라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쩐지 역부족이었다. 햇빛도 물도 적절히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러다 '나'의 시선이 문득 밖에서 자라는 남천에 가닿았을 때, 그제야 내막이 밝혀진다. 자신이 만든 틀 안에서 '적절하게' 주었던 애정이 나무    사람의 성장을 도리어 방해했던 것이다. 저 자신도 한때 누군가가 "키우던 애"였던 '나'는 이렇게 슬프고 다행한 사실을 알아차리며 "키우는 마음이 뭔지 아는 순간"에 들어선다. (p. 시 124/ 론 13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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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0-10월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신작시> 에서

  * 임승유/ 2011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 『그 밖의 어떤 것』

  * 전소영/ 2011년 『문학사상』으로 평론 부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