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월하의 공동묘지/ 권혁웅

검지 정숙자 2020. 11. 7. 21:48

 

 

    월하의 공동묘지

 

    권혁웅

 

 

  등이 가려울 때면 누군가 내 안에서, 나를 등지고

  나가겠다고 긁어대는 것 같다

 

  베란다에 두고 키우던 강아지가 나를 볼 때마다

  뒷발로 서서 유리문을 두드리듯이

 

  고골을 묻은 지 15년 만에 개묘했더니

  관에서 발버둥친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부활하면 뭐 해? 다시 관 속인데,

 

  불사가 되겠다고 진시황은 수은을 원샷하고 그 결과

  급사했다

 

  자기가 무슨 실버 서퍼도 아니고

  옛날식 온도계도 아니고

 

  칠성판에 눕는다는 건 어떤 느낌입니까?

  두툼하게 썬 광어회를 손으로 집을 때

  그런 느낌입니까?

 

  아니면 운동화 신고 빗길 걸을 때

  발가락으로 스며드는 빗물······ 같은 겁니까?

 

  죽은 이들을 위한 영구임대주택,

  내가 태어난 해에 만들어진 영화 <월하月下의 공동묘지>

 

  독립운동가의 딸 명순은 독립운동으로 투옥된 오빠 춘식과 애인 한수의 옥바라지를 위해 기생이 되고, 춘식은 동생을 위해 죄를 뒤집어써서 한수를 풀어준다 감옥에서 나온 한수는 명순을 아내로 맞고 만주를 오가며 사업을 해서 부자가 되었으나 집안의 하녀 난주의 유혹에 놀아나 조강지처를 버린다 난주는 의사를 시켜 명순의 음식에 독을 타고, 원통하게 자살한 명순은 귀신이 되어 한수의 집을 찾아오는데······

 

  근데 독립운동은 뭐하러 했지?

  자살할 건데 독은 왜 탔지?

  문이 열렸다고

  한기 새어나간다고

  아까부터 LG 디오스 냉장고가 삑삑거리며 야단이다

    -전문, 『문학선』 2020년 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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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딩아돌하』 2020-가을호 <신작소시집/ 기발표작>에서

  * 권혁웅/ 충북 충주 출생, 199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마징가 계보학』 『소문들』 『애인은 토막난 순대처럼 운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