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기록
이서린
노란 조끼에 카메라를 든 남자들이 그 집 대문을 들락거린다 과학수사대라는
글자가 등에 새겨진 무리와 경찰이 이렇게 많이 마을에 들이닥친 적이 없다
마을 정자나무 아래 얼굴을 감싸거나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망연자실 서 있는 노인들, 얼굴의 검버섯이 더욱 어둡다
그 집, 마당 안쪽 솥이 걸려있는 화덕 앞에 주저앉아 울다가 중얼거리다가 하는 월촌댁의 늙은 맨발이 까맣게 그을려 있는 7월 오후
차마 아무 말 못하고 뒤늦게 달려온 아들 앞에서 월촌댁은 실신할 듯 울어쌓는데
문간방 열린 문 사이로 김씨는 大자로 누워 긴 낮잠에 든 듯하다
내사 땅이 놀고 있는 꼴은 못 본다, 다리 절며 평생을 농사에 바친 아버지 위해 포크레인으로 김씨 몰래 밭을 갈아엎은 아들
아예 자신이 이 세상에 쓸모없다며 넋두리하던 김씨, 월촌댁이 잠깐 집 비운 사이 점심 대신 소주에 농약을 타 마시고
카메라 플래시가 수없이 터진다 감식원이 기록하고 경찰은 어딘가로 계속 전화를 하고 곧이어 구급차가 김씨를 들것에 실어 나가고 썰물처럼 무리들이 떠나고
열린 문간방엔 쓰러진 술병과 두루마리 후지, 때묻은 벽엔 빛바랜 갈색 셔츠와 종친회기념 모자가 주인 잃은 빈 방을 지키는데
대문 옆 점점이 찢긴 심장 같은 칸나, 지는 해에 검붉게 흩어지고 먼 데 소쩍새 울음 사이, 마을은 조심스럽게 등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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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아돌하』 2020-가을호 <신작시> 에서
* 이서린/ 경남 마산 출생, 199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 『저녁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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