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환생/ 이세화

검지 정숙자 2020. 10. 29. 02:34

 

 

    환생

 

    이세화

 

 

  개들이 자살하는 절벽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말없이 테레비전 속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이것은 루머입니다.

  개들의 관념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개들은 현재만을 살아갑니다.

  닥치지 않은 것에 비관하지 않습니다."

 

  동물행동학자가 말했고

  다리를 지나던 개 한 마리가

  폭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꼬리를 흔들면서

 

  쏟아지는 폭포는

  개의 이빨처럼 하얗게 변해가고

 

  텔레비전 속 전문가는

  완성된 문장을 뱉는다

 

  "사실관계에 유의하세요

  이 이야기는 제보자의 슬픔에 의한

  과잉 해석일 것입니다"

 

  흔들리는 다리를 뛰어가며 개들은 딱 한 번 울었다

  평생 없던 주인이 저 너머에서 부른 것처럼

 

  수백 마리의 들개가

  폭포가 되는 광경이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세화의 몇몇 시편들이 은유적 명명법의 순환 체계와 명사적 대체 관념의 구심적 회로를 탈피해 있을 뿐더러, 환유적 사고와 동사 중심의 언술과 묘사를 주축으로 삼는 수사법의 최대치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달리 말해, 시적 화자의 단일한 시점과 목소리가 아니라, 도리어 이를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사람과 사물과 풍경들이 저 시편들의 느낌과 분위기를 조율하는 일종의 미학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2000년대 초반 한국문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한꺼번에 등장했던 젊은 시인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했던 '미래파'를 계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미래파'로 통칭되었던 당대 젊은 시인들 가운데서도, 특히 '다른 서정'이라는 새로운 미학적 슬로건에 동의하면서 시의 시점과 화법, 스타일과 이미지 배열 구조 등등의 거의 모든 형식 차원들의 실험에 매진했던 시인들의 작법 원리를 수용하고 있는 것이 자명해 보인다. (p. 시 25/ 론 138-139) (이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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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허물어지는 마음이 어디론가 흐르듯』에서/ 2020. 9. 26. <파란> 펴냄

   * 이세화(본명, 배지영)/ 2016년『시작』으로 시 부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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