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사 팽나무
조영심
갱변 마파람 맞으며 수백 년 서해 붉은 노을을 지켜본 것은 망해사望海寺*가 아닌 절 마당 끝자리에 눌러앉은 노거수 어머니였을 것이다
천년을 흐르던 강, 물길이 가로막히자 빈 강가엔 메마른 어제의 시간이 흐르고 더듬더듬 저녁이 찾아오면, 우두커니 허물어져 가는 강쪽으로 몸을 비틀어 귀를 모았을 것이다
낙서전樂西展 팔작지붕 서까래에 발 들여놓고, 세상 이야기야 못 본 듯 안 들은 듯 겹겹 나이테에 새기고 묵은 설움에 목이 걸리기라도 하면 발끝 벼랑 아래로 몇 번이고 뛰어내리고 싶었을 심정이며 눌러 삼켰을 설움이며
허물없던 이 세상 이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저 바닷길 물막이, 애먼 강물 발목만 잡은 것이 아니고 강가에 목줄 대고 어린것들 키워내고 부양하던 손길 발길도 묶어버려, 진봉산 고개 넘는 달빛마저 물비린내 풍기는 강가를 외면할 뿐
늘 푸르던 몸, 목장승이 되었구나
침묵의 손을 바다 쪽으로 뻗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어둠을 찢고 들려오는 멍든 파도의 환청, 이런 밤이면 머리채 붓을 들어 서쪽 하늘로 치닫는 마음에 유서를 쓰고 또 썼을 것인데
삼십 삼천 두루 어둠을 밝히고 강 벼랑을 기어오르는 범종 소리, 무쇠 둘레 인경의 비천상을 쓰다듬으며 오늘도 다만 하늘의 목은 메고 또 메이고
-전문-
*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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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그리움의 크기』에서/ 2020. 9. 20. <지혜> 펴냄
* 조영심/ 전북 전주 출생, 2007년 『애지』로 등단, 시집 『담을 헐다』 『소리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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