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비둘기/ 노명순

검지 정숙자 2012. 2. 10. 02:13

 

 

    비둘기

 

     노명순(1946~2010)

 

 

  모이를 주느라

  상자 속에 손을 넣으면

  점점 치유되어가는 기운의 부리가

  갇힘이 원망스러운 듯 내 손을 쿡쿡 찍는다

  다리를 절며 깨금발로 상자 안을 뛰어다니기도 한다

  어느새 자란 날갯죽지로 포르르 날아 상자 밖을 벗어나

  선반 위에도 앉는다

  성깔부리듯 똥을 마구 갈겨버린다

  치유의 목적으로 그동안 내가 너무 끼고 살았나?

  더 이상 좁은 상자로는 그를 잡아둘 수가 없다

  그동안 좁쌀 한 줌, 물 몇 모금으로 나누었던 정한,

  식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날려보낼 때가 된 것 같다

 

  산 옆 공원으로 가 그를 놓아준다

  '제발 다치지 말고 잘 살아라.'

  놓자마자 금세 날아서 나뭇가지에 앉는다

  저렇게 하늘을 날고 싶었던 것을,

  새로 만난 비둘기와도 부리를 맞댄다

  저렇게 딴사랑도 만나고 싶었던 것을,

 

 

  *『월간문학』2006.4월호/ 특집<미래시 시인회>에서

  * 노명순(1946-2010) 전북 익산 출생, 1989년『월간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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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월호 읽다가 故 노명순 시인의 시, '비둘기'를 발견- 고이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