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노명순(1946~2010)
모이를 주느라
상자 속에 손을 넣으면
점점 치유되어가는 기운의 부리가
갇힘이 원망스러운 듯 내 손을 쿡쿡 찍는다
다리를 절며 깨금발로 상자 안을 뛰어다니기도 한다
어느새 자란 날갯죽지로 포르르 날아 상자 밖을 벗어나
선반 위에도 앉는다
성깔부리듯 똥을 마구 갈겨버린다
치유의 목적으로 그동안 내가 너무 끼고 살았나?
더 이상 좁은 상자로는 그를 잡아둘 수가 없다
그동안 좁쌀 한 줌, 물 몇 모금으로 나누었던 정한,
식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날려보낼 때가 된 것 같다
산 옆 공원으로 가 그를 놓아준다
'제발 다치지 말고 잘 살아라.'
놓자마자 금세 날아서 나뭇가지에 앉는다
저렇게 하늘을 날고 싶었던 것을,
새로 만난 비둘기와도 부리를 맞댄다
저렇게 딴사랑도 만나고 싶었던 것을,
*『월간문학』2006.4월호/ 특집<미래시 시인회>에서
* 노명순(1946-2010) 전북 익산 출생, 1989년『월간문학』으로 등단
---------------
* 과월호 읽다가 故 노명순 시인의 시, '비둘기'를 발견- 고이 잠드소서.
'작고 시인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지영 평론집『욕망의 꼬리는 길다』(발췌)/ 엄마생각: 기형도 (0) | 2015.12.23 |
---|---|
유성호_혜산 박두진 탄생 100년을 맞이하며(발췌)/ 해 : 박두진 (0) | 2015.11.12 |
이경철_순수와 참여를 봉합하는 시성(발췌)/ 저것이 문명인가 : 임정남 (0) | 2015.10.09 |
이영주_ 그리운 것들/ 歲月월이 가면 : 박인환 (0) | 2015.09.05 |
춤/ 노명순 (0) | 2010.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