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2015-가을호 <그리운 것들, 그리운것들/ 명동백작 박인환 시인: 글과 사진/ 이영주>에서 발췌
歲月월이 가면
박인환 (1926~1956)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박인환 전집』(맹문재 엮음, 실천문학사, 2008)-
나는 손가락으로 『박인환 전집』의 페이지들을 꾹꾹 누르며 그 감각들을 느껴본다. 그리운 것들. 그리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빼곡 적혀 있구나. 우리를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위대한 힘, 그리움에 대한 것들. 모든 시는 잃어버린 피, 잃어버린 사랑을 몸속에 다시 흐르게 하는 데 바쳐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p-19)
뒤늦게 ebs 방송 <명동백작>을 보면서 수시로 눈가가 젖었다. 방 안에서, 동네 카페에서, 길거리에서, 그 시대의 시인들처럼 나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카페에서 사람을 만나고 카페에서 남몰래 운다. 우리는 카페에서 서로 만나지만, 헤어진다. 그러나 가끔 생각한다. 우리가 진짜로 만나고 있는 것인지, 우리가 진짜로 헤어지고 있는 것인지. (p-20)
* 이영주/ 시인. 1974년생, 시집 『108번째 사내』『언니에게』『차가운 사탕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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