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박지영 평론집『욕망의 꼬리는 길다』(발췌)/ 엄마생각: 기형도

검지 정숙자 2015. 12. 23. 15:50

 

 

  * 박지영 평론집욕망의 꼬리는 길다』「기억의 변형과 왜곡」_ (발췌)

 

 

     엄마생각

 

     기형도(1960~1989, 향년 29세)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전문-

 

 

  진실과 리얼리티(Reality)

  시 쓰기에 진실은 있는가? 있다면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본고에서는 시적 화자의 기억이 과연 어디까지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삼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이 경험해봤겠지만 어릴 적 기억을 부모님을 통해 확인해보면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기억이 정확하다고 믿지만 그 기억이 사실과 다른 일이 적지 않다. 우리의 기억은 대부분 주체의 생각이나 환상이 덧붙여져 변형되고 왜곡된 기억이다. 그렇게 변형되고 왜곡된 기억을 프로이트는 덮개기억이라고 했다. (p.55)

 

  기형도의 「엄마생각」에는 오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불안 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다. '찬밥, 금간 창'에서는 가난이 비친다. 화자는 찬밥처럼 차가운 빈방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고 있다. 화자는 왜 혼자 빗소리를 들으며 울었을까? 아마도  어머니가 영영 안 돌아오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자신의 머리에 떠오른 환상이 현실이 될까 봐 두렵고 무서워 훌쩍거리며 운 것이다.

  어둠 속에서 혼자 자던 아기가 깨서 운다. 울던 아기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울음을 잠시 그친다. 엄마가 가까이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아기는 엄마와 분리되면 불안해한다. 엄마는 자기의 생명을 보호해주는 절대자이다. 아이는 커서 성인이 되어서도 위험한 상황에 당면하게 되면 사후작용에 의한 최초의 분리 기억이 되살아나 불안이 증폭된다. 「엄마생각」의 시적 화자도 최초의 불안이 지금의 불안을 불러온 것이다. (p.58~58)

 

 

  * 평론집 『욕망의 꼬리는 길다』/ 2014. 7.14. <문학의전당> 펴냄

  * 박지영/ 경북 의성 출생, 1992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서랍 속의 여자』『귀갑문 유리컵』『검은 맛』『눈빛(사진시집』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