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이미산
게으르게 누워있던 칼이
내리꽂힌다, 도마 위의 고등어를 향해
배고픈 매의 눈알처럼 번쩍이며
피가 튄다 붉은 내장이 끌려나온다
도마 위에서 피 맛을 즐기는 저것은
칼의 혀
칼의 살 속으로 저며 드는 칼의 날
고등어를 자르고
고등어 속 바다를 자르고
바다 속 어둠을 자르고
어둠의 실핏줄을 자르고
검붉은 녹을 자르고
피묻은 옆수리를 자르고
환한 중심 속에 입맛을 다시는
칼의 눈
시장의 소음들, 단잠을 삼킨 바다가 가라앉는다
고요하게 잠든 칼
제 잠을 베고 제 어둠을 베고 제 몸을 베고
하얗게 빛나는 허기
누군가 날을 벼리고 있다
*시집 『아홉시 뉴스가 있는 풍경』에서/ 2010.9.10 한국문연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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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산/ 경북 문경 출생, 2006『현대시』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