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송이 꽃송이
이미산
내 방 벽지에 꽃송이 가득하네
잠시도 나를 떠난 적 없는 눈빛이네
여태 저들과 눈 한 번 맞추지 않았네
꿈속으로 초대한 적도 없네
손 내밀어 꽃송이 어루만지네
꽃송이들 흔들리며 내 앞에 쏟아지네
달려와 이불이 되네
꽃이 만발한 이불을 덮고 나는 여행을 떠나네
지난겨울의 눈꽃을 만나네
스무 살의 벚꽃도 만나에
누군가의 상여 위에서 문풍지 소리를 내며 울던
무늬가 지워진 하얀 꽃도 만나네
늦가을 들꽃도 만나네
쏟아지는 달빛 그 영혼의 꽃들도 만나네
우주를 떠도는 먼지 한 송이, 꽃이라 부를 수 없는
기억의 점 하나도 만나네
단잠 자는 아이의 그 볼에 핀
살꽃송이도 만나네
벽에 걸려 말라가는 내 생일 꽃도 만나네
알록달록 풍선들 바람 빠져 쭈글쭈글한
오오 놀라 깨어나면 내 눈썹 내 이마 내 손 내 이불이었던
꽃송이들 벽지 속으로 돌아가고
창문 밖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네
꽃송이 만지던 그 손가락으로
방바닥에 새겨진 한 여자의 등뼈를 일으켜 세우네
*시집 『아홉시 뉴스가 있는 풍경』에서/ 2010.9.10 한국문연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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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산/ 경북 문경 출생, 2006『현대시』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