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돌아오지 않는 것/ 황희순

검지 정숙자 2012. 2. 6. 22:35

 

 

    돌아오지 않는 것

 

     황희순

 

 

 당신을 만지면 피가 묻어나요. 누군가 들락거린 금 간 유리창에 닿아 손

끝을 베이죠. 시간을 더듬어 당신 깊숙이 피 묻은 손을 넣다가 나는 언제

나 변질된 마음자리에 풍덩 빠져 허우적거려요. 당신은 허우적거리는 나

를 통째로 삼켜버리죠. 그럴 때마다 칙칙한 껍질을 벗어놓고 손에 잡히는

증오와 불안을 한줌 쥔 채 탈출해요. 탈출에 익숙해진 내 몸에도 어느새

금 간 유리창이 하나 생겨, 그 안에 당신에게서 가져온 증오와 불안을 가

득 쌓아 두었죠. 그것들은 밤마다 반짝반짝, 한 천년 후 모두 찬란한 별이

보석들이죠. 사랑의 기억은 암흑물질이 되고, 증오와 불안이 우리은하

빛나는 주인이 되리라는 걸 당신은 모르죠.

 

 

  * 『문학마당』2011-여름호 <우리시대의 신작시>에서

  *  황희순/ 충북 보은 출생, 1999『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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