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프로젝트 - 51
정숙자
비둘기 안녕/ 우리 동네 산책로에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이
환경에 적응하게 하는
동물 사랑입니다”
저 문구를 대할 때마다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가 오히려 비둘기에게, 또는 주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아닌가, 작년 7월부터 고민해 왔다. 그러니까 작년 7월에 저 플래카드가 등장했던 것이고, 고민의 요인인즉 강요가 아닌 권유형 구호였기 때문이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맙시다, 라든가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면 엄벌에 처합니다, 라든가
비둘기들이 전기 합선을 일으키며, 병원균도 퍼뜨릴 수 있습니다, 쯤의 지시였다면 내 오랜 친구들과의 마음-나눔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설득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게 글의 힘, 표현의 힘이었구나! 그게 ‘사랑’이 아니라는 데야 어쩌겠는가.
지금도 몇몇 비둘기는 나를 보면 뒤뚱거리며 달려온다. 일부러 아는 척도 안 하고 지나치지만, 그들의 실망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속 아프다. 구청 담당자께서 비둘기와 아울러 나 같은 사람의 마음까지를 헤아리고, 고심해 만든 문장이었을 테니,
저 또한 따뜻한 시가 아닌가.
이 도심에서 자급자족하는 비둘기야, 비둘기들아, 안녕? 안녕?
우리 서로 안녕- 안녕히- 견디며- 겪으며 흐윽 살아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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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문예』 2020-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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