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장화/ 최란주

검지 정숙자 2020. 7. 26. 11:41

 

 

    장화

 

    최란주

 

 

  벗어놓은 장화 속에

  빗물이 고였다

  어느 나라의 지도로도 변신한 적이 있는

  장화는 우기의 용도지만

  아프리카의 어느 사막 마을에선

  강수량을 재는 도구로도 쓰인다

 

  장화는 물을 걸을 수 있는 신발이다

  물의 다양한 깊이들이

  활기차게 발목을 재는 혹은

  진흙탕들처럼 빛나게

 

  동물은 흰 발목과 검은 발목을 지닌 천연장화를 신고 있다. 비가 오지 않은 날에는 괴물의 장신구로도 변하거나 고양이의 자비로운 훈장이 되기도 한다. 사막여우는 사막모래 빛 장화를 신고 황새는 큰나무 붉은빛 장화를 신고 개구리는 퐁당퐁당 소리가 나는 장화를 신는다

 

  기우제를 지낼 때 장화는 필수적인 요소다

  너의 장화는 나의 지팡이 보다 더 멋지다

 

  장화의 내계가 우화한다

  나는 고양이의 애인이었던 장화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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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문예』 2020-봄호 <2020년 신춘문예 시 · 시조 당선자 신작특집 2>에서

  * 최란주/ 202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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