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날/ 이미산

검지 정숙자 2010. 10. 12. 01:23

 

    날

 

     이미산



   게으르게 누워있던 칼이

   내리꽂힌다, 도마 위의 고등어를 향해

   배고픈 매의 눈알처럼 번쩍이며

   피가 튄다 붉은 내장이 끌려나온다

   도마 위에서 피 맛을 즐기는 저것은

   칼의 혀

   칼의 살 속으로 저며 드는 칼의 날


   고등어를 자르고

   고등어 속 바다를 자르고

   바다 속 어둠을 자르고

   어둠의 실핏줄을 자르고

   검붉은 녹을 자르고

   피묻은 옆수리를 자르고

   환한 중심 속에 입맛을 다시는

   칼의 눈


   시장의 소음들, 단잠을 삼킨 바다가 가라앉는다

   고요하게 잠든 칼

   제 잠을 베고 제 어둠을 베고 제 몸을 베고

   하얗게 빛나는 허기

   누군가 날을 벼리고 있다

 


    *시집 『아홉시 뉴스가 있는 풍경』에서/ 2010.9.10 한국문연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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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산/ 경북 문경 출생, 2006『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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