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세상의 비의(秘義)에 다가선다,...(발췌)/ 이규식

검지 정숙자 2020. 7. 21. 13:31

 

 

    세상의 비의秘義에 다가선다,

    세상을 향해 일갈한다

 

    이규식/ 문학평론가

 

 

  신춘문예 등단은 일견 화려해 보인다. 새해 벽두 신년호 신문 지면을 큼지막하게 장식하며 감회에 찬 당선소감과 함께 소개되는 신인들은 관심 있는 사람들의 주목과 선망을 불러일으킨다. 곧 이어 신춘문예 당선작품 시집도 나오고 더러 원고청탁도 들어오지만 그 기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친정격인 신문사에서는 매년 등단시킨 시인, 작가들을 살갑게 챙기고 지원할 시스템이나 의지가 그다지 잘 갖추어져 있지 않은 까닭이다. 꽤 긴 세월 시인으로서의 내공을 쌓으면 몇몇은 그 신문사에서 제정한 문학상이나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거나 시 해설코너 집필을 의뢰받기도 한다.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등단 수요를 문학잡지, 특히 시의 경우 시 전문 월간, 격월간, 계간지에서 맡아 나간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총 300여 개에 이른다는 문예지, 주로 시 전문지는 그러므로 우리나라 시 창작-유통-소비의 핵심적인 채널을 담당하고 있다. 300개로 가정하여 각 잡지에서 매호 30여 명, 60편의 시를 게재한다면 60편 x  4회 x 300종 = 72,000편의 시 작품이 문학잡지를 통하여 발표되는 셈이다. 활동하는 시인 숫자에 비교해도 그런대로 적지 않은 물량일 수 있겠지만 이 경우 편중과 쏠림 현상으로 고루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 대체로 자기 잡지에서 등단한 시인과 전국적인 지명도를 확보한 시인, 그리고 그런 연고 저런 관계로 연결된 경우가 주류를 이루어 점차 많은 문학잡지가 '동인지' 형태로 나아가는 것이 이즈음 우리나라 문학계간지의 현실이다. 등단 기회를 부여한 시인들에게 가급적 많은 지면을 제공하려는 의지는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전문 문학잡지, 상업지를 표방하면서 동일한 동아리 위주의 필진 치중은 경영상의 어려움이라는 우리나라 문학잡지 공통의 현안을 감안하더라도 적절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과감하고 폭넓은 문호개방, 문학잡지 간의 전향적인 소통과 교류, 신인 발굴 과정에 있어서 수준향상을 위한 공동대응 노력 등 대승적 차원에서 새로운 쇄신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운영난으로 폐간하는 문예지가 하나둘 늘어나는가 하면 그와 함께 새로 창간하는 잡지 또한 적지 않다. 우리나라 문학, 특히 시 생산-유통-소비 채널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아날로그(종이) 문예지가 전환기에 즈음하여 상생의 지혜, 문예지 본연의 권위회복을 위한 공동노력에 나서기를 기대한다.(p. 144-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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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엠포엠』 2020-여름호 <2020 포엠포엠 봄호 리뷰> 에서

  * 이규식/ 문학평론가, 평론집 『행간으로 읽는 문학』 외 다수, 역서 『적과 흙』 외,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