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탄생 이전에 혼자서 피고 진 목련
허만하
인류 발생 이전의, 2천만 년 전, 중신세中新世의 어느 날 아득히 먼 지구의 한 곳 지금의 미국 대륙 아이다호 동부 클라키아의 강 또는 호수 기슭에서 목격자 없이 혼자 화사하게 피어 있었던 목련꽃. 화산재 또는 밀려드는 진흙 두께에 속절없이 묻혀버렸던 한 그루 목련의 존재가 최근에 잎사귀 화석의 엽록소 DNA 분석으로 밝혀졌다(The Clarkia Flora of northern Idaho; Rember WC(2007), University of Idaho, Moscow Idaho). 그 한 그루 목련의 탄생과 죽음이 과연 시와 무관한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시 자체였다고 나는 믿는다. (p.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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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 2020-여름호 <권두시론>에서
* 허만하/ 1932년 대구 출생, 1957년 『문학예술』로 등단, 시집 『해조』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언어 이전의 별 빛』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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