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잉어 대회/ 정익진

검지 정숙자 2020. 7. 18. 16:52

 

 

    잉어 대회

 

    정익진

 

 

  1.

  잉어들의 움직임은 구름과 같이 종잡을 수 없습니다

  무슨 충격을 받아 저렇게 비늘이 돋아났을까

 

  바람처럼 저 잉어들도

  출신을 알 수 없습니다

 

  잉어 도감에도 발견할 수 없는 종족들입니다

 

  몸통을 휘저으며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신이 찾을 수 없는 그 곳으로

 

  몇몇은 환희의 표정을 지으며

  꽃잎을 흩날리며

  엽서를 띄우거나

  혹은 은둔자의 분위기를 풍기며

  모자를 벗어던지고 옷자락을 나부끼며 안갯속으로 멀어져 갑니다

 

  잉어의 입에서 토끼가 튀어나온다든지

  신천옹과 함께 날아간다든지 하는 따위의 소문은 사실입니다

 

  또 다른 의상을 갈아입고 등장할 것입니다

  숲 속 작은 벌레들이나 물속의 미생물 그리고

  이끼를 뜯어먹으며 수면 위로 떨어지는 이슬과 나뭇잎의 파문을 느끼며

  자유스럽고 평화롭게 물속을 유영하는 것은

 

  명상이 깊어진 사람이 물결무늬 코트를 입고

  산신령 같은 손짓으로 새들을 불러 모으며

  잎사귀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숲 속을 거니는 일입니다

 

  한 때 잉어들도 만신창이였죠

  비늘 떨어진 자리에 진물이 배어 나오고 지느러미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렀습니다

  거칠고 어두운 바닥을 기어 다니며 영영 돌아올 수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출발해서 어디로 헤엄쳐 가는 것일까요

 

  2.

  주황색 잉어가 서른여섯 마리

  하얀 잉어 여든다섯 마리

  하얀 바탕에 붉은색 무늬 잉어 아흔세 마리

 

  그들이 노니는 곳으로

  천국 출신의 무지갯빛 잉어 떼 수천 마리가 몰려옵니다

    -전문-

 

 

  * 편집부 알림> '당신들의 말'은 2020년 봄호부터 새롭게 추가되는 지면입니다. 'ooo, 되기까지'는 한 명의 예술가에게 지속적인 자양분이자 결정적인 영감이 되어준 것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입니다. 'ooo, 보다'는 비평가 고유의 시선으로 지금-여기의 문제적인 지점을 날카롭게 짚어보는 자리입니다. 'ooo, 여기 있음'은, 고집스럽게 또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시를 써나가는 시인의 육성을 들어보는 자리입니다. (블로그주: 'ooo, 여기 있음_정익진 편/ 인터뷰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은 책에서 일독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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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ITION 포지션』 2020-여름호 <POSITION 6/ 당신들의 말_정익진, 여기 있음>에서 
  * 정익진/ 1997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 『구멍의 크기』 『낙타 코끼리 얼룩말』 『스캣』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