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2020, 여름/ 하여진

검지 정숙자 2020. 7. 18. 01:30

 

 

    2020, 여름

 

    하여진

 

 

  지하철 문이 열리고 아이 업은 여자가 들어온다 오른손에는 까만 봉지가 들려 있다 아이를 덮고 있는 담요는 더럽고 냄새가 심하다 힘이 없어 보이는 여자는 손잡이를 잡고 있으나 금방 주저앉을 듯 위태하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 승객들은 냄새가 나는 쪽으로 자꾸 힐끗거린다 여자 앞에 앉은 남자가 코를 막고 일어서며 그녀를 노려본다 문이 열리자 남자가 재빠르게 내린다 남자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자리를 옮기거나 아이 업은 여자와 되도록 멀리 선다 다시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온 어린 여학생이 아이 업은 여자 옆에 선다 비명을 지르는 여학생의 손가락이 아이엄마 목을 가리키며 뒷걸음질 친다 여자의 목 위로 구더기들이 스멀스멀 기어다닌다 검은 먹구름 같은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진다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목에 기어가는 구더기들을 손으로 훑어 입으로 가져가 씹는다 입술 사이로 노란 액체가 흐른다 그녀의 어깨가 움직이면서 담요가 흘러내린다 그녀의 드러난 등 위로 수십 수백 마리 구더기들이 구물거린다 담요가 바닥에 떨어진다 죽은 고양이가 그녀의 등에 업혀있다 마스크를 쓴 고양이 얼굴 위로 구더기들이 하얗게 덮여있다

 

  5호선 열차가 대서역大暑驛을 지나고 있다

 

 

   ------------------- 
  * 『POSITION 포지션』 2020-여름호 <POSITION 1/ 지난 봄호, 블라인드 시인_자선 대표시>에서 
  * 하여진/ 2009년 『시인세계』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