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의 귀
송은숙
물의 표면에 바짝 귀를 대고 수련은 물의 소리를 듣고 있다
연못이 얼음의 뼈를 허물 때 움푹 팬 상처 자리를 햇살이 핥아주는 소리
물의 무게를 견디며 물수세미가 자라는 소리
몸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귀인 수련이 듣는 것은
물 안쪽의 소리인지 물 밖의 소리인지
그러니까 수련의 귀는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 걸까
혹은 하늘과 연둣빛 풍경이 연못에 비칠 때
그 풍경은 물 안의 풍경인지 물 밖의 풍경인지
하늘 위로 물가의 수양벚나무 꽃들이 떨어져
꽃잎 주변의 물 주름과 물 주름이 입술의 주름처럼 서로 만날 때
물 주름은 물의 안과 밖을 접으며 빠르게 번져가는데
수련의 귀는 매끄럽고 반짝거리네
소리가 귀걸이처럼 둥글게 매달려 있다는 듯
수련은 잎새 하나를 뒤집으며 뒷면을 보여주네
거기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물의 수런거림이 모여 있다는 듯
나는 수련의 귓바퀴 언저리에서 자꾸 뒤집히는
물의 안과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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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0-여름호 <신작>에서
* 송은숙/ 2004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돌 속의 물고기』 『골목은 둥글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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