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손잡이 달린
최정례
긴 손잡이 달린 편수 냄비에서 따르고 있었다. 컵에 따르고 있었다. 슬플 것도 없고 지루할 것도 없고 뭔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긴 손잡이 달린 편수 냄비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데워진 우유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갈 데 없는 삼월이었다. 식탁 위에는 접시 하나가 있고 그것을 다 따르면 접시 위의 것을 먹을 차례였다.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긴 손잡이 달린 편수 냄비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북두칠성은 편수 냄비의 모양이고 그 잇댄 끝은 북극성, 작은 곰은 거기 꼬리를 댄 채 뒤집혀 있고, 큰곰이나 작은곰이나 하늘에는 그들만의 자리가 있고 그것은 그들만의 일이고, 긴 손잡이 달린 편수 냄비의 그것을 따르고 있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뭔가를 잡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늘 잡고 있으려 했고 놓지 못하고 있었다. 긴 손잡이 달린 편수 냄비의 월요일이었다. 일요일 같기도 했다. 앉아서 컵을 제자리에 놓고 접시의 것을 먹고 그러면 다 되는 하루였다. 울컥 쏟아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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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ITION 포지션』 2020-여름호 <POSITION 4/ 신작시>에서
* 최정례/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 『레바논 감정』 『개천은 용의 홈타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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