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 쿠마리
김선향
네팔에는 아직도 살아있는 여신이 있다지
쿠, 마, 리,
혈통과 가계가 온전한 집안의 어린아이는
수십 가지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네
마지막으로 성스러움이 있느냐를 따져 뽑힌 쿠마리는
부모와도 떨어져 쿠마리館에 갇힌다고 하지
유폐된 삶을 강요받는다고 하지
학교도 친구도 모른 채 살아간다고 하네
불과 네 살의 나이로 여신으로 받들어진 너는
이제 여덟 살
10루피를 지불하고 1분 남짓 어렴풋이 너를 본다
화염처럼 붉은 옷을 입은 쿠마리여
불의 신 아그니처럼 이마에 불의 눈을 그린 채
슬픔도 기쁨도 노여움도 모르는
무표정한 얼굴이 되었구나
여든 살 노파처럼
어쩜 넌 간파했을지도 몰라
초경이 시작되면 곧장 버림받을 네 비참한 운명을
넌 벨리강 건너로 내던져질 거야
누구도 추방당한 쿠마리 따위 거두어주지 않는단다
북인도 지방을 유령처럼 떠돌다가 창녀로 전락한다지
쿠마리와 결혼하면 재수가 없고 불행해진다는 미신 때문에
남자들은 하나같이 도망친다지
너는 떠돈다 넝마를 두른 채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 너
여신과 창녀 사이에 쿠마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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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사람』 2020-여름호 <신작시>에서
* 김선향/ 2005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여자의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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