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파편들-10월 삽화/ 황희순

검지 정숙자 2020. 7. 10. 15:55

 

 

    파편들

    -10월 삽화

 

    황희순

 

 

  주변을 얼씬대던 잠자리가 거미줄에 걸렸다

  죽길 기다리거나 잠자리 구해 주려는 내 손 눈치챘거나

  거미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너는 운명을 믿는 거니?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슬며시 내려놓았다

 

  이튿날 거미줄엔 잠자리 파편만 하늘하늘, 거미는 여전히 지붕 밑에 딱 붙어 나를 노려보고

 

  내 껍질도 거미줄에 전시될지 몰라

  우주를 말하자면 우리 서로 다를 게 뭐 있겠냐만

 

  벽돌을 던져 뱀을 죽인, 뱀 쪼아먹은 닭의 알 깨뜨린, 허공을 쥐락펴락하며 사람이든 무엇이든 별걸 다 고장 낸, 너를 단박에 터트릴 수도 있는 네게 없는 무기

 

  자, 봐, 무소불위 이 손

  열 개나 되는 나의 손가락

 

  그래서 말인데, 얘야

  거미줄 치는 재주가 있다 해도 까불면 안 돼

  너뿐이겠니, 모든 목숨은

  비밀병기 하나는 품고 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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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층』 2020-여름호 <다층시단>에서

  * 황희순/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수혈놀이』 외 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