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하立夏
송진
창틀에 애틋환 초록이 앉아 있었다
초록아
초록아
계단을 디딜 때마다 은은한 햇살이 한켜 한켜 쌓아 올린 금빛 나방이 앉아 있기도 했다
나방아
나방아
누구도 원망하지 않은 시간이 오래 흘러갔다
그 시간이 영원이라는 새라도 타투 새길 듯
자전거 체인이 찌르륵 찌르륵
다가올 잣나무의 미래를 불렀다
청록빛 스카프에 사람의 냄새가 스며들었다
깊이
아주 깊이
오월의 벚나무의 잎은 바람에 자주 뒤집혀 허연 배를 드러내곤 했다
어제는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였는데···
아주 오래된 일처럼 잊고 살았다
개들은 새로 온 애견미용사에게 맡겨졌다
능숙한 미용사지요
G 동물원 원장의 칭찬이 이어졌으나 개들은 부정이라도 하듯 멍멍 사납게 짖었다
창가에는 솜사탕 같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머 부산은 눈이 귀한 곳인데···
급히 투명문을 통과해 나갔는데
이미 눈은 장례식처럼 끝난 후였다
아쉽지만 아쉽지 않았다
살아생전, 바다의 끝물이었다
털왕관 쓴 개들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현관 방충망이 또 스르르 저절로 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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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20-여름호 <다층시단>에서
* 송진/ 1999년 『다층』으로 등단, 시집 『지옥에 다녀오다』 『시체 분류법』 『미장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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