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구암리 고인돌*/ 김기찬

검지 정숙자 2020. 7. 2. 03:09

 

 

    구암리 고인돌*

 

    김기찬

 

 

            *

 

  죽음이 한데 모여 살고 있다

  밤이고 낮이고

  불이 들어오지 않는 저 어둡고 습한 돌무덤에는

  내 안의 피가

  내 아버지의 문드러진 살이

  내 할아버지의 삭은 뼈가 기록되어 있다

  술 한 잔 따라 올리고 싶은

  죽음을 고인 돌

 

          *

 

  열한 마리 돌거북 가족들이

  천년도 더 넘게

  한 발짝도 떼지 않고

  먼 길 가고 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던 것일까 거북스럽게,

  평생 갈 곳도 없으면서

  시간이 지칠 때까지

  천 리를 가고 있다

 

          *

 

  나는 문득 생각해 본다 내가 들어와 갇힌 이곳엔 죽음의 시작에 가닿는 문이 있어서

 

  잿빛 상복 입은 구름이 늘어서 곡을 하고 밤새 비는 雨雨雨 눈물 흘리다 가고 어쩌다 달이 조문객처럼 들렀다 가는 곳

 

  아득한 먼 곳으로부터 나이 많은 무덤이 시간의 간이역을 건너오고 건너오고 건너오고 있다고

 

  다음 정거장에 도착할 때까지 바로 앞에서 쿵쿵쿵쿵, 쿵쿵쿵쿵 지나가는 자동차처럼 번쩍번쩍 부싯돌 당기면서

 

          *

 

  벙벙히 고인 시간이 저수지의 물처럼

 

  오래된 시간은 깊이를 잴 수 없어 맨 아래에서 시커멓게 늙고

 

  지금 시간은 넓이를 잴 수 없어 맨 위에서 퍼렇다

 

  흘러가지도 못하는 수천만 년의 고요를 휘휘 장대로 저어본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시간이 고여 썩어가는

 

  여기보다 깊은 바닥은 없으리라

      -전문-

 

 

  * 전북 부안군 하서면 구암리에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남방식 고인돌군이 있다

 

  -------------------

  * 『미당문학』 2020-하반기호 <신작시>에서

  * 김기찬/ 1994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바닷책』 『채탄부 865-185』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