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플루토(pluto)/ 신혜정

검지 정숙자 2020. 6. 22. 01:07

 

 

    pluto*

 

    신혜정

 

 

  잔잔한 물결에 이는 파문처럼

  소리 없이 퍼진다.

  격렬한 흔들림.

  흔들림은 새로운 문을 열고

  열고 열고 부딪히고

  서로를 열어 다시 속살을 젖히고

  치고 치고 자극하고 툭,

  하는 한 번의 자극에도

  영원을 약속하듯.

 

  멈추지 말자고 했다.

  내가 여기에서 출발하면 당신은

  반대편으로 가 최대한.

 

  마주치지 말자고 했다.

  우리는 문을 연 자들.

  무엇이었는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아름다운 것에 눈먼 죄.

 

  그런 오류가 있었다고 기록하기로 하자.

  한 번은 사랑이었고, 한 번은 증오였고,

  한 번은 이별이었고, 한 번은 그리움이었다가,

  한 번은 죽음이었고, 한 번은 영원이었던.

 

  이 말할 수 없는 세계를 우린 열었고

  서로를 파헤치고 속살을 헤집어 결국

  파괴가 파괴가 아닌 그곳까지

  내려갔다.

 

  모든 흔들림은 안으로부터 온다.

 

  진동하는 입자들

  가시可視 밖의 선들

 

  감촉도 없이 툭, 툭, 툭,

 

  검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이곳은

 

  지금

              -전문-

 

   * 플루토.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옥의 신으로, 플루토늄plutonium의 어원이 되었다.

 

 

   ---------------

  * 『시사사』2020-봄호 <시사사 포커스>에서

  * 신혜정/ 시인, 2001년 《대한매일》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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