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남겨진 방/ 허연

검지 정숙자 2020. 6. 22. 00:39

 

 

    남겨진 방

 

    허연

 

 

  용인 화장터 화구에 당신을 밀어 넣고 온 날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신발처럼

  당신이 있던 방에서

  반나절이나 엎어져 있었어요

  과묵한 후배는 자꾸 어디론가 나가선

  소주를 한 병씩 사들고 왔어요

 

  오래 전에 말라죽은 화초들과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만든

  손금 같은 무늬와

  순장된 유물처럼 흩어져 있는 책들.

 

  돌아갈 때를 놓친 새처럼

  당신의 방에 앉아 들어요.

  모든 게 분해될 때나 들릴 것 같은

  신비스러운 이명耳鳴

 

  방 한가운데까지 치고 들어온 햇살은 성스럽기만 하고

  영혼 한 개

  먼지에 섞여 하늘로 올라가는 게 보여요

  뭘 챙기고 버려야하는지 그걸 알 수 없어서 우린

  자꾸 눕기만 하고

 

  창밖 주인집 사철나무 잎은

  계시처럼 반짝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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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사』2020-봄호 <신작특집>에서

  * 허연/ 1991년 시집 『현대시세계』로 등단